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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3년, 시카고의 기차역이었어요. 그날 기차역은 아침부터 기자들, 공무원들, 일반 사람들로 꽉차서 북적거립니다. 그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도착하는 날이었어요. 그 노벨 평화상 수상자를 맞이하기 위해서 기차역이 사람들로 꽉 차 있었던 거죠. 드디어,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기차에서 내립니다. 키가 190 센티가 넘고, 더부룩한 머리에, 콧수염을 한 그 남자를 사람들은 열렬히 환영합니다. 카메라 플래쉬가 터지고, 기자들이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 다가오고, 환영 피켓을 든 사람들도 환호를 하고…. 그 남자는 기다리던 그 많은 사람들에게 잠시 미안하다고 인사를 한 다음, 어디론가 급히 가는 겁니다. 저 편에 커다란 케리어 두개를 들고서 난처한 듯 서 있는 나이가 제법 있는 한 아주머니에게 다가 가서, 그 여자분이 짐을 옮기는 것을 도와 줍니다. 그리고, 그 케리어를 버스 정류장까지 옮겨 주고, 조심해서 잘 가라는 인사까지 건넵니다. 그 아주머니도 고맙다고 인사를 하죠. 그제서야, 그 노벨 평화상 수상자는 기다리던 기자들 앞으로 와서,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환영 인파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합니다. 그 모습을 지켜본 한 기자가 이런 말을 합니다. “난생 처름으로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진정한 실천가를 만났다.”

 이 노벨 평화상 수상자는 바로 우리가 잘 아는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였어요. 의사이자 선교사로, 아프리카의 가장 가난한 곳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평생을 바쳤던 사람이죠.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선교사로서 영웅적인 업적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날리지만, 그 삶의 모습은 참으로 겸손하고 조용했다고 많은 사람들이 기억합니다. 

 ‘겸손’은 우리 가톨릭 신앙의 아주 중요한 덕목 중에 하나이고, 구원 받는데 꼭 필요한 덕목입니다. ‘겸손’은 단순히 내 자신을 낮추는 것이 겸손이 아닙니다. ‘겸손’은 내 자신에 대해서 솔직하게 인정하고, 내 자신의 처지와 상황을 제대로 알고 받아들이는 것이 ‘겸손’입니다. 내가 나약하고 부족한 인간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은총과 도움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죠. 한 마디로, ‘내 자신의 참되고 솔직한 모습을 인정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우리는 모두 부족한 인간입니다. 내 능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잘 나고 똑똑한 존재가 아니라, 늘 부족하고 약한 존재입니다. 이런 나의 처지를 정확히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겸손’입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하죠. “네 자신을 알라!” 한마디로, 니 꼬라지를 알라는 거죠. 이것이 겸손입니다. ‘내 자신을 아는 것.’ 반면에, 나약한 인간이라는 내 처지를 잊어버리고, 내가 마치 하느님과 같은 전능한 존재인 것처럼,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다른 사람들 판단하고 평가하려 하고, 또 실수하고 잘못한 사람들 단죄하려 하는 행동들이 ‘교만’한 행동인 겁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식사 자리에서 윗자리를 차지하려는 이들에 대한 비유 말씀을 하시면서, 교만에 대해서 꾸짖으십니다. 우리는 모두 윗자리에 앉으려고만 하고, 서로 상전이 되려고만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정반대로 겸손하게 낮은 자리를 차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윗자리를 차지하려고 다투기만 하다 보면 언젠가 끝으로 밀려나고 맙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진리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상전 노릇 하려고 하고, 잘난척 하는 사람은 저절로 종의 신분으로 밀려 날 것입니다. 반대로, 겸손하게 봉사하고 남을 섬길 줄 아는 사람은 나중에 더 큰 존경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된다는 진리입니다. 이 단순한 진리를 알면서도 잘 실천하지 못하게 되는 이유는 내가 상대방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교만 때문이죠. 

 우리 신앙 생활도 가만히 반성해 보면, 내가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보다는, 하느님이 내 뜻을 따라야 합니다. 내가 공동체의 뜻을 따르기 보다는, 공동체가 내 뜻을 따라야 합니다. 안 그러면, 난리 나죠. 성당 안 다닙니다.

 ‘겸손’은 우리 신앙 생활이 성장하는 가장 아름다운 덕목 중에 하나입니다. 참된 겸손은 내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하느님이 누구인지 깨닫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나의 주인이시고, 나의 창조주이시고, 나는 그 분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깨닫는 것입니다. 나는 하느님의 보살핌과 사랑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런 사실대로 살아가는 것이 겸손입니다. 내 뜻대로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뜻에 모든 것을 맡기도 따를 줄 아는 용기가 바로 겸손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진리입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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