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주 존경하는 선천성 뇌성마비를 앓는 중증 장애인이 있습니다. 이름은 최창현. 이분은 머리 아래쪽을 전혀 쓸수 없는 장애인이예요. 그가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머리와 입밖에 없었습니다. 그분은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데, 입으로 얇은 막대기를 이용해서 전동 휠체어를 조정합니다. 그렇게 신기하게도 여기 저기를 다녀요. 그 분은 비록 중증 장애를 안고 살아갔지만, 꿈이 하나 있었어요. 세계 여행을 가는 것이 그분의 꿈이 었어요. 그 꿈이 과연 가능 했을까요? 드디어, 작은 휠체어를 타고, 입에는 작은 막대기를 물고, 세계 종단 여행을 하기로 결심을 하고 길을 떠납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분은 정말 놀랍게도 미국을 비롯해서 유럽과 중동 35개국 약28,000 킬로를 횡단 합니다. 2년 동안, 하루도 쉬지않고, 전동 휠체어로만 세계를 횡단한 겁니다. 자동차나 비행기를 전혀 타지 않고 말이죠. 그 전동 휠체어는 속도가 약 10마일 정도 밖에 안됩니다. 입으로 전동 휠체어를 조종하면서 최장 거리를 달린 기록으로 기네스북 세계 기록에 등재되어 있어요. 숫한 어려움들과 난관을 극복하며 방문한 많은 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격려했고, 많은 선물을 격려의 뜻으로 주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화제가 되었어요.
한번은 미국 서부 LA에서 동부 뉴욕으로 미국 대륙을 이 전동 휠체어를 타고 횡단을 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뉴욕에 도착합니다. 뉴욕의 한 거리에서 어떤 노숙자와 함께 노숙을 하며 밤을 보내게 되었대요. 다음 날 아침, 그 노숙자의 도움으로 아침 식사까지 마치고 나서, 계속 자신의 횡단 여행을 위해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노숙자의 고마움에 작은 보답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자신에게는 줄 것이 하나도 없었다고 합니다. 한참을 생각하다 그 노숙자에게 물 두 컵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을 해요. 그의 부탁에 노숙자는 물 두컵을 가져 옵니다. 노숙자가 다 마신 물 컵을 보면서, 뇌성 마비 1급 장애인 최창현씨는 이렇게 말해요. “당신은 스스로 당신 컵의 물을 마실 수 있지만, 나는 누군가가 물을 먹여주지 않는다면 혼자서는 전혀 물을 마실 수가 없습니다. 당신처럼 자신의 의지대로 자유롭게 물을 마실 수 있다는 그 자체가 엄청난 축복입니다. 내가 받은 축복에 감사하고 늘 희망과 용기를 갖고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당신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그 노숙자는 눈물을 흘리며 휠체어에 탄 장애인을 뜨겁게 포옹합니다. 그 사진이 뉴욕 신문에 크게 실린 적이 있어요. 우리는 내가 얼마나 많은 축복을 받았는지 사실 모르고 살아갑니다. 내가 누리고 있는 많은 것들을 전혀 누리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굉장히 많아요. 내가 받은 많은 축복들 늘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제가 자주 말씀 드리죠. 감사의 양이 많아질 수록 행복의 양이 커집니다. 그리고, 감사를 많이 하면, 스트레스도 줄고, 실제로 호르몬의 변화가 생겨서 기분도 좋아지고 건강에도 좋습니다. 건강하게 행복하게 오래 살고 싶으시면, 늘 감사 하면서 살면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시 당신을 따르던 사람들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아주 중요한 몇가지를 말씀 하십니다. 오늘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마지막 여정 중에 있어요. 이제 예루살렘에 도착하면 수난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어요. 그 마지막 여정, 수많은 사람들이 따라 나섰지만, 끝까지 남은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죠. 가까운 제자들도 예수님이 잡혀 가시니까, 모두 뿔뿔이 흩어집니다. 여기서, 결정적으로 예수님은 멈추 서서, 당신을 따르던 많은 군중들을 보시고, 묻습니다. “너희는 이제부터 어찌하겠느냐?” 너희는 나를 따를 작정이 되어 있느냐? 정말 나를 따라 오려면 십자가를 져야 하는데, 기꺼이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겠느냐?” 십자가를 지고 따르겠느냐는 질문에 사람들은 주저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을 따라 살기 위해서는 그 댓가를 치러야 한다는 겁니다. 희생을 치르기고 하고, 손해도 봐야 한다는 거죠. 바로 그 순간 그 많던 군중들이 하나 둘씩 떠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이 희망차고 기쁜 이야기를 하고, 기적을 보여줄 때는 수많은 군중들이 환호하면서 기쁘게 따라 나서지만, 십자가 이야기를 하니까 모두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면서 떠나가는 거죠.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르고 싶긴 하지만, 십자가는 싫어요.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희망적이고 기분 좋은 얘기인데, 십자가 얘기만 나오면 싫어요. 영원한 행복과 영원한 삶을 얻는것은 좋은데, 그 댓가나 희생을 치르기는 싫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짊어지고 가야할 인생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나이에 관계 없이, 남녀 노소 누구나 인생의 십자가가 있어요. 일곱살 난 아이들도 인생의 고민이 참 많아요. 왜 우리 인생에는 짊어져야할 십자가가 있는 걸까요? 이 십자가는 때로는 가족일 수도 있고, 육체적인 질병이나 정신적인 아픔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경제적인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십자가일수도 있죠. 우리 모두에게는 인생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신앙인으로 져야할 십자가도 생깁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는 사실, 사랑하기 때문에 지는 겁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져야할 십자가도 없어요. 자식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가족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또 내 인생이 소중하기 때문에 우리는 십자가를 기꺼이 지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이유도, 우리 인간들을 너무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웬수 같은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져야하는 십자가는 바로 사랑하기 때문에 지는 겁니다. 원수와 웬수의 차이점 아시죠? 원수는 밉지만 같이 안살아도 되는 사람이래요. 웬수는요? 미워 죽겠는데, 죽으나 사나 같이 살아야 되는 사람이래요. 우리 주변에 웬수가 얼마나 많아요. 자식도 웬수, 남편도 웬수 … 사랑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는 사람을 위해서 십자가를 질 일은 사실 거의 없어요. 즉, 오늘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질 수 있겠느냐는 질문은, 바꾸어 말하면, 사랑 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너는 이제 부터 나를 따르면서, 참된 사랑을 실천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십자가의 의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사랑의 십자가’이고 ‘희망의 십자가’입니다. 인생의 십자가가 ‘사랑의 십자가’이고 ‘희망의 십자가’이기 때문에 지지 못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겁니다. 십자가를 짊어지고 갈 결심, 바로 사랑의 실천에 대한 결심입니다. 그리고, 이 십자가는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 주는 구원의 징표입니다. 십자가를 외면하고 피하고 살지, 아니면 기쁘게 그 십자가를 짊어지고 살지 그 선택은 우리 자신의 몫입니다. 우리가 짊어지게 될 사랑의 십자가, 희망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영원한 삶과 영원한 행복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