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강 - 성전의 파괴와 그리스도교의 탄생
제 1 강. 성전의 파괴와 그리스도교의 탄생
이번 주부터 약 두달에 걸쳐서 세계 교회사 특강을 준비했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종교로 인한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가 서로 대립하고, 끊임없이 분쟁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요즘 그 대표적인 예가 유대교와 이슬람교간의 전쟁이죠.
지금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은 유대교와 이슬람교간의 종교간의 대립과 영토를 차지하기 위한 분쟁입니다. 이 분쟁의 역사는 2000년도 훨씬 전에 시작 되었어요.
또, 이슬람교와 그리스도교의 분쟁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죠. 특히, 중세 십자군 전쟁 때가 절정이었습니다. 총 8번에 걸친 십자군 원정으로 약 200년 동안 그리스교와 이슬람교는 정말 치열한 전쟁을 합니다. 장장 200년 동안을 그렇게 치열하게 싸웠으니 서로 감정이 좋을리가 없죠.
그리스도교 안에서도 가톨릭과 개신교가 갈라졌고, 가톨릭은 또 서방 가톨릭과 동방 정교회로 분리되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있었던 걸까요? 하느님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오셨고, 인간을 구원하러 오셨는데, 인간들은 서로 종교와 사상 때문에 갈라지고, 서로 죽이고, 끊임없이 대립합니다.
“이 사람들이 서로 하나되게 해주십시오”하고 예수님은 그토록 간절히 기도했는데, 인간들이 서로 평화롭게 사이좋게 살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이런 교회의 역사를 다시 한번 되짚어 보고, 과연 우리가 믿는 신앙이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디로 흘러 가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떤 신앙인으로 살아야 할지 성찰해 보는 기회를 갖는 것이 이번 교회사 특강의 목적입니다. 그리고 역사 안에 인간과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세계 교회사 첫시간으로, 우리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직후의 상황으로 가보겠습니다. 교회가 처음 탄생하게 되는 이야기는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어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나서, 열두 제자를 포함해서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집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40일 동안을 제자들에게 나타나시면서, 흩어져 있던 제자들을 다시 불러 모으십니다. 그리고, 40일이 지난 후에 승천하시죠. 부활과 승천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모여서 함께 지내면서 처음으로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만들어집니다. 이것이 ‘초대 사도들의 공동체’가 됩니다.
특히, 오순절날, 즉 예수님께서 부활하신지 50일 되는 날, 하늘에서 내려오신 성령을 체험하게 되고, 그때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약 3000 명이 회개했다는 이야기가 사도행전 2장에 잘 전해집니다. 그렇게 초대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예수님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과, 몇몇 여인들, 성모 마리아가 그 공동체에 함께 지냅니다. 사도 행전 2장에 그 공동체의 모습이 전해집니다.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기뻐하며 지냅니다.
그런데 이 초대 공동체는 아직 공식적으로 ‘그리스도교’라는 이름을 갖지는 않았습니다. 이 공동체 구성원들은 모두 유다인들이었어요. 모두 율법을 지키고 안식일을 지키는 유다인으로 살면서, 단지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따르는 사람들이었죠. 그래서, 이 초대 공동체는 유다교의 한 종파로 여겨졌습니다. 그리스도교라는 이름을 정식으로 얻게 되는 것은 한참 후의 일입니다.
그러다가 기원후 70년에, 유다인들의 역사에 완전히 전환점을 맞는 엄청난 사건, 엄청나게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파괴 되버립니다. 이 성전은 두번째 재건한 성전이었습니다. 유다인들에게 성전의 의미는 대단한 거예요. 하느님의 현존을 상징하는 것이고, 유다인들의 모든 정치, 종교, 사회, 문화의 중심이 바로 성전이었습니다.
유다인들은 스스로 하느님의 선택된 백성이라고 믿고 사는 민족이었죠. 모든 유다인들이 기억하는 가장 놀라운 역사는 바로 이집트 탈출 사건입니다. 이집트에서 수백년 동안 노예 살이를 하다가 모세의 인도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되죠.
시나이 광야에서 40년을 지내는 동안, 하느님의 현존을 상징하는 ‘지성소’를 짓고, 거기서 하느님께 제사를 지냅니다. 이때 ‘지성소’는 천막이었어요. 매일 이동을 해야하니까 천막으로 된 ‘하느님의 집’을 만들었던 거죠. 그러다가, 가난안 땅에 정착한 후로는 ‘천막’으로된 이동식 ‘지성소’가 더 이상 필요없게 되었고, 마침내 ‘성전’을 짓게 됩니다.
솔로몬 왕이 아주 아름답고 웅장한 성전을 완성해요. 거기서, 하느님께 제사와 예배를 지냅니다. 이 성전은 말 그대로 ‘하느님이 거처하시는 집’이예요. 하느님 현존의 상징입니다.
기원전 586년에, 하느님 현존의 상징인 성전이 처음으로 무너집니다. 바빌로니아가 침공해서 성전을 완전히 파괴해 버리고, 유다인들은 고향 땅을 떠나 모두 유배를 갑니다. 성전이 무너진 사건은 유다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어요. 하느님의 현존이 무너진 겁니다. 그리고, 스스로 하느님 백성이라는 정체성에도 큰 혼란이 오게 됩니다.
바빌로니아를 멸망시킨 페르시아 제국이 유다인들을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돌려보내게 되고, 고향땅으로 돌아온 유다인들이 제일 처음 시작한 일이 바로 성전을 재건하는 일이었어요. 그렇게 세워진 새로운 성전을 ‘제 2성전’이라고 부릅니다. 처음 솔로몬이 지은 성전이 ‘제 1성전’이 되는 거죠.
그리고 이때 성전 재건과 함께, 무너진 정체성과 민족성을 다시 바로 잡기 위해서, 이스라엘 역사를 다시 재정립하게 되는데, 이때 ‘모세 오경’을 비롯한 대부분의 구약 성경의 책들이 쓰여집니다.
이렇게 두번째로 재건된 예루살렘 성전도 완전히 파괴되고 맙니다. 유다인들에게는 정말 비극적인 사건이었어요. 기원후 70년의 일입니다. 로마 제국에 의해서 완전히 파괴되요. 두 번째로 재건한 성전마저 완전히 파괴된 것은 유다인들에게 도저히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충격이 됩니다.
성전이 파괴된 과정이 이렇습니다. 기원후 60년 경이었어요. 유다인들이 로마 제국에 바쳐야하는 세금을 제때 내지 못하니까, 로마 총독이 성전의 금고에 보관되어 있는 보물들을 세금대신 강제로 빼앗아갑니다. 이교도들이 거룩한 성전에 무단 침입해서 하느님께 바친 예물들을 마구 약탈해 가니까, 유다인들이 화가 나서, 예루살렘에 있던 로마 병사들을 죽여버립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로마 제국에서 진압군을 파견하게 되고,
유다인들은 똘똘 뭉쳐서 로마 군대에 대항해서 무장 봉기를 합니다. 이것이 유다 독립 전쟁이었습니다. 8년간을 치열하게 싸우다 결국 항복을 하고 맙니다. 이때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 성전을 완전히 불태워 버려요.
남은 유다 독립군들이 마지막으로 도망쳐 간 곳이 ‘마사다’라는 곳이예요. 해발 430 미터 높이의 바위 산인데, 사방이 가파른 절벽이예요. 그 절벽 꼭데기에서 900여명이 마지막까지 남아서 로마 군대에 대항해서 끝까지 싸웁니다.
백만 대군의 로마 제국의 군대에 맞서서 그 산꼭데기에서 900명이 장장 3년을 버티면서 싸워요. 요새를 만들고, 지하터널을 파서 지하수를 끌어 올리고, 직접 식량을 만들어 먹고, 그렇게 절벽 꼭데기에서 버티면서 삽니다. 그 유적이 지금도 남아 있어요.
그렇게 3년을 버티다가, 로마 군대 백만 대군이 완전히 포위하고, 모든 식량과 식수원을 다 끊어버리니까, 결국은 포기합니다. 900명이 모두 집단 자살을 해요. 원래 유다인들은 자살을 할 수가 없어요. 생명을 주신 하느님을 배반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자살은 용납이 안되는데, 10명씩 조를 짭니다. 그리고, 각 조장이 자기 조의 조원들을 모두 죽입니다. 그리고 살아남은 조장 중에 다시 대표로 뽑힌 사람이 또 나머지를 죽이고, 그렇게 모두 죽이고 나서 마지막에 남은 한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그렇게 집단 자살의 형태로 900명이 모두 죽어요. 로마 군대가 산꼭데기 요새에 들어가 보니까 900여명이 모두 죽어 있고, 어린 아이들과 여자들만 한 5명 정도 겨우 살아 있었대요.
그렇게, 유다인의 독립 전쟁이 막을 내리고, 예루살렘 성전도 완전히 불타 없어지고, 유다 백성들은 모두 이스라엘 땅에서 완전히 추방됩니다. 이것이 기원후 70년 경에 일어난 사건이예요. 이 사건은 유다인들에게 엄청난 역사의 전환점이 된 사건이기도 하고, 동시에 그리스도교 입장에서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 순간입니다.
성전이 모든 삶의 중심이었던 유다인들에게 성전의 파괴는 엄청난 충격이었고, 고향 땅에서 완전히 추방되면서, 그때부터 전세계 각지로 흩어져 살게 됩니다. 성전은 유다인들에게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는 장소였는데, 그 성전이 없어지면서, 이제 더이상 제사를 드릴 장소가 없어지게 되었죠. 그리고 제사를 지내는 제사장들도 이제 필요가 없게 됩니다.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면서, 작은 예배당 같은 ‘회당’을 만들어서, 거기 모여서 함께 기도를 합니다. 성전에서 하느님께 제물을 바치고 제사를 지내는 ‘제사 중심’이었던 유다교가 이제는 회당에서 구약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예배 중심의 종교로 바뀌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제자를 지내던 제사장들 대신, 구약 성경을 가르치는 랍비들이 새로 생겨나게 됩니다. 유다교가 완전히 그 형태와 제도가 바뀌게 되는 거죠.
그리스도인 공동체도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이 하게 됩니다. 성전이 파괴되고, 예루살렘을 떠나 각지로 흩어져 살게 되면서, 이제 새로운 방식으로 공동체를 형성하고, 새로운 민족들과 새로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성전이 무너지지 않았더라면, 초대 공동체 신자들은 그냥 예루살렘에 그대로 눌러 살았겠지요. 그리스도를 따르는 유다인들로 율법을 지키고 성전에서 제사를 지내면서 유다인으로 살았을 겁니다. 그런데, 이제는 새로운 문화권에 적응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특히, 90년 얌니아에서 열린 유다교 지도자들의 회의에서 그리스도교와 유다교가 완전히 분리됩니다. 그 이전까지 그리스도교는 유다교의 한 종파로 여겼어요. 그런데, 이제 그리스도교는 유다교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종교라고 선포됩니다. 그때부터, 그리스도교는 유다교와 완전히 분리 되면서, 새로운 종교로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그리스도인들은 유다교로부터 배척을 받습니다.
당시 주변 인근 지역은 모두 헬레니즘 문화가 지배하고 있었어요. 헬레니즘 문화는 고대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문화인데, 아주 형이상학적이고 예술과 철학에 관심이 많았어요. 고대 그리스 철학과 신학이 바로 헬레니즘 문화의 산물입니다. 신에 대한 물음들,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과 철학적인 논쟁이 대표적이죠.
그리스도교의 구원론, 창조론, 특히 원수도 사랑하라는 박애 정신이 헬레니즘 문화를 만나면서, 새로운 사상으로 그 지역 사람들에게 엄청난 관심을 받게 됩니다.
바오로 사도가 그리스 아테네에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설교를 하죠. 이 설교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게 되는데, 그 이유가 바로 이 사람들이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사고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겁니다. 이렇게, 그리스도교는 유다교와 완전히 분리되면서, 새로운 종교로 탄생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그리스도교는 로마 제국으로부터도 박해를 받죠. 그 이유가 몇가지 있어요. 먼저, 로마 제국은 황제를 신으로 받들죠. 그리스도인들은 이 황제 숭배 사상을 부정합니다. 그리고 로마 제국은 군대가 만든 정권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전쟁도 반대하고, 군대 징집도 반대합니다. 또 당시 군인들은 모두 전쟁을 주관하는 미트라 신을 숭배했어요.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을 믿으니, 미트라 신 숭배 사상도 받아들일수가 없었죠.
이렇게 로마의 정지 사회 구조와 지배 질서에 완전히 반대하는 새로운 사상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을 로마 제국은 참을 수가 없죠. 엄청난 박해를 합니다.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유다교로부터도 배척을 받고, 로마 제국에서도 박해를 받는 고난의 시간을 보냅니다. 장장 240년 동안. 기원후 313년, 종교의 자유가 인정될 때까지 장장 240년 동안 박해를 받지만, 온갖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그리스도교 신앙은 급속도로 퍼져 나갑니다.
헬레니즘 문화와 만나 새롭게 탄생하게 된 그리스교 공동체에는 아주 중요한 몇가지 변화들이 생깁니다. 이것이 앞으로 그리스도교의 성장과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먼저, 복음서가 이때 쓰여집니다. 초대 공동체에는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목격했던 목격 증인들이 모두 살아 있었어요. 그 목격 증인들이 직접 전해주는 이야기이니까, 그 증언은 믿을 만 했었고, 기록으로 남겨야 겠다는 필요성이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차츰 이 목격 증인들이 죽게 되고, 그리스도인 첫세대들이 지나가면서,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침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서 기록을 해서 문서로 남겨야겠다는 필요성이 생기죠. 그래서 쓰여지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복음서입니다. 그리고 이 복음서가 헬레니즘 문화 안에서, 그리스어로 번역이 됩니다. 이 그리스어 번역본 성경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중요한 변화가 그리스도교 사상에 대한 여러가지 해석들이 나오게 되었어요. 예를 들어, “예수님은 신의 아들로 세상에 오셔서, 인간의 모습을 잠시 띄었던 것이지, 사실 인간은 아니었다”는 학설이 생겨요. 즉, 예수님의 신성만 강조하고, 인성은 부정하는 ‘영지주의’ 사상이 생깁니다. 그리고, 이에 반대해서, “예수님은 원래 인간이었는데, 하느님이 가장 훌륭한 인간인 예수를 뽑아서 구세주로 삼으신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에비온파’가 또 생겨납니다.
이런 제각각의 해석을 하나도 통일할 필요가 있었죠. 그래서 ‘사도 신경’을 만듭니다. 이 사도 신경에 근거해서 그리스도교 신앙 내용을 하나로 통일하는 거죠. 신앙의 내용을 일목 요연하게 정리해서 하나로 정립하는 겁니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 셨으며, 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 그리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 성령을 믿으며,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사도신경)
그리고, 세 번째로, 이 시기에 생긴 아주 중요한 변화는, 여러 해석과 논쟁이 생길때, 이것을 중재할 권위가가 필요하게 된 겁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제일 믿을만한 권위자들은 바로 목격 증인들인 ‘사도’들이죠. 그리고, 그 사도들에게 직접 전해 직접 듣고 직접 배운 제자들이 교회의 권위자들이라는 견해에 따라, ‘사도 계승권’이 생깁니다.
사도들에게서 전해진 것만이 교회의 권위있는 가르침으로 믿는 겁니다. 이 ‘사도 계승권’으로 교황과 사제직이 탄생하게 되는 겁니다. 가톨릭 사제들은 모두 사도 계승권에 의해서 초대 사도들로 부터 직접 권한과 능력이 전해진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리스도교가 본격적으로 그 제도와 형태를 갖추게 됩니다.
요 약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모여서 함께 지내면서 처음으로 ‘초대 공동체’를 형성한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지 50일째 되는 ‘오순절’에 성령을 체험하게 되고, 이때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약 3000 명이 회개한다. (사도행전 2장)
기원후 70년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 기원후 60년 경부터 시작된 유다 독립 전쟁이 8년간의 항쟁 끝에 막을 내리고, 이때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 성전을 완전히 불태워 버린다.
예루살렘 성전 파괴 후, 이스라엘 땅에서 완전히 추방된 유다 백성들은 세계 각지로 흩어젼 살게 되고, 이때 ‘회당’을 짓고, 유다교의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 성전 중심, 제사 중심의 유다교는 경전 중심, 예배 중심의 종교로 변화된다.
성전 파괴후, 그리스도인 공동체도 예루살렘을 떠나 각지로 흩어져 살게 되면서, 새로운 지역에서 방식으로 공동체를 형성하고, 새로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90년 얌니아에서 열린 유다교 지도자들의 회의에서 그리스도교와 유다교가 완전히 분리. 그리스도교는 새로운 종교로 독립한다.
헬레니즘 문화와 만난 그리스도교 사상은 그리스, 아테네, 알렉산드리아 등지로 급속도로 전파된다.
로마 제국의 박해 : 황제 숭배 사상 부정, 전쟁과 군대 징집 반대, 군인들이 믿는 미트라 신 숭배 반대 등 로마의 정치 사회 구조와 지배 질서에 완전히 반대하는 사상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에게 로마 제국은 엄청난 박해를 가한다.
헬리니즘 문화 속에 성장한 그리스교 공동체의 주요 변화
복음서 집필, 그리스어 번역본 등장
사도 신경의 완성 : 이단과의 논쟁으로 신앙의 요약과 정리의 필요성. (영지주의: 예수님의 신성만 강조, 에비온파: 예수님의 인성만 강조)
사도 계승권의 정립: 사도로 부터 직접 계승된 교회의 권위 정립